외신기자들이 들을까 창피스런 얘기다. 대통령이 “장관들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얘기를 받아 적지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묵묵히 받아 적기만 하는 장관들을 보면 저기 대통령과 국무총리 자리 뒤쪽에 대형 칠판만 걸려있지 않을 뿐 꼭 초등학교 저학년 받아쓰기시간 같지 않은가. 한껏 격을 높여봐도 중학교 교실 받아쓰기 그대로다. 아니라면 국회 속기사 같기도 하고 국무회의와 각 부처 사이를 왔다갔다 기록을 전달하는 연락병 같지 않던가.
장관(長官)이라면 글자 그대로 최고 벼슬이다. 지방장관이면 지방 최고 벼슬이고 육군장관이면 육군 최고 자리다. 그런데도 국무회의에서 '꿀 먹은 벙어리'로 단 한 마당, 반 마당의 토론도 벌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대통령 집무실을 '오벌 오피스(oval office)'라 부르는 것은 국무회의 대형 테이블이 계란 모양의 원탁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장관들은 투구 갑옷 벗어 던진 '원탁의 기사'처럼 자유스런 토론을 벌인다. 대통령님 말씀만 받아 적을래야 적을 여유가 없다. 일본 총리 관저 회의실엔 아예 탁자가 없다. 우리도 노태우 정부 때부턴가 원탁을 도입했다. 그랬는데도 그 원탁에 넘치는 '원만한' 토론이 불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可)'와 '예스'만 있고 '부(否)'와 '노'는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야말로 '제왕적' 권위 앞인 옛 어전(御前)회의에서는 의외로 '불가 장관(判書)'이 많았다. “아니되옵니다” “불가하옵니다”를 넘어 “천부당만부당한 분부 거두어주옵소서”가 툭하면 튀어나왔다. 번역하면 '씨도 안먹히는 소리 좀 작작 하라'는 뜻이었다. 치과 출신의 과기처장관, 정외과 출신의 문화부장관, 법대 나온 해양수산부장관 등 전문성 이탈과 질적인 함량 미달도 문제다. 한 말에서 서너 되는 모자라고 5ℓ에서 1∼1.5ℓ는 모자라 보이는 장관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관두면 국가가 손해”라던 팔푼이 장관은 어떤가. 120% 철철 원탁에 넘치는 초과 함량 장관들의 종횡무진 벌이는 자유 토론의 국무회의는 언제쯤 보여줄 것인가.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받아쓰기 장관
입력 2002-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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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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