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7월 영국의 한 연구소에서 양(羊) 한마리가 태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태어난 과정부터 보통 양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어느 암양 체세포(유방세포)에서 핵을 떼어내 다른 암양의 난자속에 넣어 세포분열을 일으키게 한 뒤, 이를 다시 대리모 암양의 자궁에서 길러 세상 빛을 보게 한 것이었다. 이른바 복제양이었다. 연구소에서는 이 양의 이름을 가슴이 큰 미국의 여가수 ‘돌리 파튼’에서 따와 ‘돌리’라고 지었다.
이듬 해 2월 돌리가 태어난 사실이 영국의 주간 과학지 ‘네이처’를 통해 알려지자 온 세상이 들끓기 시작했다. 동물복제는 곧 인간복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데서 오는 충격이었다. 당장 미국사회에선 레이건 전 대통령, 테레사 수녀,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 등이 복제인간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수십 수백명의 복제히틀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확산되기도 했다.
그야 어떻든 돌리 이후 체세포를 복제한 동물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미국 일본 뉴질랜드 등지에서 생쥐 송아지를 비롯해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원숭이까지 복제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젖소의 자궁세포 DNA를 복제해 어린 젖소를 출산시켰다. 그밖에도 세계 각국의 예를 일일이 다 들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이런 와중에 이번엔 또 장기이식 때 거부반응이 없는 돼지까지 복제돼 세계가 다시 떠들썩하다. 드디어 인간이 동물의 장기를 달고 살아갈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이다.
생명과학은 나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원하든 원치않든 이제 인간복제도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예상밖의 일이 생겼다. 복제동물의 효시라던 돌리가 최근 이상한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양에 비해 노화속도가 빠른데다 다섯살 반 어린 나이에 관절염까지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神)의 섭리를 어긴 탓인지, 아니면 생명과학 수준이 아직은 덜 성숙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우선은 다소나마 마음이 놓인다. 그만큼 인간복제도 멀어질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종교 윤리문제 등을 떠나서라도 인간복제는 역시 두려운 일이기에.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