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진정한 무사는 추운 겨울날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이 검찰을 불신하는 이유는 검찰이 공정 청렴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말하며 검찰의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나섰다. 이 총장이 말한 곁불이란 옆에서 빌붙어 쬐는 불이다. 당당하지 못한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곁불이란 곡식의 겨를 태우는 '겻불'에서 유래했다. 겻불은 뭉근하게 타기 때문에 불기운이 신통치 않다. 그래서 겻불은 신통치 않거나 시원하지 않은 것을 빗대는 말로 사용됐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곁다리로 쬐는 곁불로 바뀌어 '군자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격언으로 발전했다. 우리 속담에 이와 비슷한 말로 '봉황새는 천길을 날면서 굶주려도 땅에 떨어져있는 좁쌀을 쪼아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도 이와 똑같은 격언이 있다.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渴不飮 盜泉水)는 말로 제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의롭지 못한 재산은 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가 어느날 승모(勝母)라는 마을을 지나게 됐다. 해가 지고 배가 고팠으나 이 마을을 그냥 지나쳤다. 이유인즉 '어머니를 이긴다'는 뜻을 가진 마을에서 자식이 유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후 공자는 도천(盜泉)이란 샘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몹시 갈증이 났으나 그냥 지나쳤다. 도둑의 샘물을 마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모두가 선비의 당당한 기개와 자세를 일깨우는 말들이다.
곁불이란 말은 한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즐겨 사용했다. 이 총재가 처음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지난 2000년 3월 4일 충남 예산에서다. 4·13총선을 앞두고 이 총재는 “충청권이 더 이상 정권의 곁불이나 쬐는 사람들의 표밭이 돼서는 안된다”며 지역감정의 불을 지피려 애썼다. 이 총재는 지난해에도 논산시장 보선의 지원유세에서 “민주당과 그 옆에서 곁불을 쬐려는 자민련은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며 곁불을 단골 정치용어로 삼았다.
어쨌든 곁불은 빌붙어 사는 떳떳하지 못한 행동의 대명사다. 곁불기피는 검찰뿐 아니라 힘있는 곳으로만 몰려다니는 정치인들이나 대선후를 대비, 보험을 들기 위해 정치권에 줄대기하는 공직자들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곁불
입력 2002-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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