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바둑기사들은 시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직한 수졸(守拙·초단), 젊
고 어리석은 약우(若愚·2단), 싸움을 좋아하는 투력(鬪力·3단)의 과정을
거쳐 조금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소교(小巧·4단)에 이른다. 그리고 지혜를
쓸 줄 아는 용지(用智·5단)와 이치를 깨닫고 통하는 통유(通幽·6단)가 돼
야 비로소 모양새와 실용을 갖추는 구체(具體·7단)가 된다. 그 다음에야
조용한 마음으로 세상을 조감할 줄 아는 좌조(坐照·8단)에 이르러 신의 경
지라는 입신(入神·9단)의 단계에 도달한다.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바둑
의 고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몸과 마음, 실전의 수련이 필요한지
를 보여주는 명칭들이다.
이러한 바둑은 때로는 협상을 통한 평화, 태풍과 전운, 피흘리는 치열한
공방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술수 등을 반상에 수담(手談)을 통해 펼치
는 묘미로 한·중·일 3국에서는 일찍부터 가장 많은 애호가를 확보하고 있
는 두뇌 스포츠로 자리 잡아왔다. 반상에서는 지위·학력·연배없이 두 당
사자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며 361개 착점 어디에 두어도 상관없는 자
유 평등의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배할 뿐 부정 부패의 소지도 주어지지 않는
다. 이러한 바둑이 대한 체육회로부터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 받았다.
서양의 체스나 브릿지 게임이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이미 지난 90
년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됐음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늦은감이 있다.
바둑이 한·중·일 3국의 틀을 벗어나 세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일본이 처음 40여개국이 참가하는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 대회
를 열면서부터였다. 그러다 1988년 일본의 후지쓰배, 그 이듬해 대만의 잉
창칭배, 90년 한국의 동양증권배등 세계선수권대회가 잇달아 창설됨으로써
국가간 실력비교도 가능해졌다. 한국은 1993년 진로배 국가대항전 우승과
이들 3개 대회의 싹쓸이 우승으로 세계최강국으로 군림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왕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바둑 종주국으로, 일본은 바둑 선진
국으로 자부하는 가운데 한국은 바둑 최강국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셈이
다. 이제 바둑의 올림픽 종목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장고(長考)에 들
어가 이를 위한 수순과 행마의 묘를 찾아야 한다. <成定洪 (논설위원)>成定洪>
바둑의 스포츠化
입력 2002-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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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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