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콩 기습으로 병력 3분의 1을 잃은 미 제11보병여단 찰리중대 윌리
엄 켈리 중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을주민 중에도 베트콩이 숨어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주민 전원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때마침
전우들의 죽음에 분노해 있던 병사들은 주민들을 마을회관 앞에 모아놓고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미치광이 사격은 어린이를 포함, 최소한 504명이 목
숨을 잃고 나서야 겨우 그쳤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3월 16일 벌
어진 참혹한 밀라이마을 대학살사건 전말이다.
밀라이에 버금가는 대학살은 6·25전쟁 때 한국 땅에서도 벌어졌다. 가
장 유명한 게 지난 99년 AP통신에 의해 폭로된 ‘노근리 사건’이다. 1950
년 7월 26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철교밑 터널 속에 있던 피난민들
을 향해 미군들이 무차별 사격, 수백명이 살해된 사실을 AP통신이 들춰낸
것이다. 당초 미국은 이를 완강히 부정했으나 유족들의 강력한 요구로 한미
공동조사를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해 1월 ‘노근리 사건은
철수중이던 미군에 의해 피난민 다수가 사살된 사건’이라는 조사결과를 발
표했다. 마침내 미군의 민간인 학살행위를 공식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발포가 상부 명령에 의해서인지 여부는 미국측의 일관된 부인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두리뭉실 넘어갔었다.
그리고 1년, 영국 BBC방송은 며칠 전 ‘6·25 때 미군지휘부가 노근리를
포함한 여러 곳에서 양민에 대한 무차별 사격명령을 내린 사실이 드러났
다’고 보도했다. BBC는 내달 1일 ‘모두 죽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물
을 방영,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이라고 한다. 방송은 ‘모든 피난민들
에게 발사하라’는 등 민간인들에 대한 사살명령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히
고 있다. 한사코 우발적 사건임을 주장해온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자
못 궁금하다.
노근리의 진상은 정녕 무엇일까. 비록 반세기 전 일이라지만 진실을 규명
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그나마 외신(外信)에 의해서나 겨우 하나
하나 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처지도 꽤는 답답하다. <박건영 (논설위
원)>
"모두 죽여라"
입력 2002-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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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2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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