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이 세태 풍자소설 '금도금시대'(The Gilded Age)를 출간, 정재계와 사회부패상을 비판한 것이 1873년이었다. 그만큼 19세기 말 미국은 배금주의가 팽배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온 철강왕 A 카네기가 1902년 1천만달러를 들여 카네기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대사건이었다. 지난 1991년 일본과학계가 이 거액을 인건비 기준으로 해서 91년 화폐가치로 환산한 결과 무려 2조6천억엔에 달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기업인들의 인식은 과학연구는 돈만 삼키는 위험한 사업이었다. 카네기는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경제적 부를 쌓은 미국이 유럽국가에 있는 과학연구소처럼 기초과학연구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 국력에 상응하는 품위이자 위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몇 달뒤 록펠러 부자가 600만달러를 들여 기초의학연구소를 세웠고 1930년에는 수학과 이론 물리학의 센터인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설립됐다. 이로써 미국에서도 과학자가 사회적인 대접을 받는 기틀이 다져진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여전히 과학의 전당, 기술 창조의 메카로 군림했다. 미국이 높은 임금과 파격적 대우로 유럽의 과학 두뇌를 유치하고 국내 인재 양성에 열 올린 결과 60년대 미국 과학기술자들의 임금은 유럽에 비해 거의 두배에 달했다. 이로 인해 61년부터 65년까지 5년동안 유럽의 저명 과학 기술자 5만여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다른 외국과의 격차는 줄었지만 미국에서 이러한 과학 기술자 우대 정책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부는 최근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이공계 졸업생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등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종전에 최고 7대3으로 이공계 응시자가 많았던 대학 수능시험에서 지난해에는 10대5의 비율로 인문계 응시자가 많아지자 정부가 대책을 서두르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 지망생을 늘리기 위해서는 과거 미국이 보여준 것과 같은 과학 기술자가 우대받는 풍토조성과 지원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이와 함께 우수 이공대생 확보를 위해 대입 수능시험후 인문 이공계간 교차 지원을 허용한 대학 입시제도의 개선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