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15일 정부는 하나의 교육혁명을 단행했다. 다음 해 즉 1969학년도부터 중학교 입학을 무시험제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7·15 어린이 해방’이라고까지 불렸던 이 조치의 목적은 무엇보다 중학교 입학을 둘러싼 과열경쟁을 해소하고 교육의 평준화를 이루자는데 있었다.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엔 중학교 입시과열 대신 고등학교 입시 준비교육을 치열하게 하여 중학교 교육을 비정상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기에 보다 좋은 중학 진학을 위한 초등학생들의 무더기 위장전입으로 수도권 인구집중까지 부추겼다.
 마침내 정부는 또 한차례의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고교평준화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1973년 2월 28일 정부는 인문계 고등학교 입시를 학군별로 나누어 연합고사에 의한 추첨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74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고교평준화 역시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마찬가지로 과열 입시경쟁과 과외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신 대학에 목을 매는 입시전쟁은 여전하고, 과외병도 사라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사교육비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유명 사설학원이 얼마나 몰려있는가에 따라 그 지역 집값이 좌우되는 기현상이 일고, 공교육을 믿지 못한 교육이민마저 극성을 부린다.
 보다 못한 듯 최근 어느 부총리 한 분이 고교평준화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나섰다. 그는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역·학교별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평준화 일변도로 끌어온데 있다”고 혹평했다. 거기까진 그런대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흥분해서였을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식밖의 말까지 쏟아놓고 말았다. “차라리 일제(日帝) 때의 교육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그렇잖아도 역사왜곡을 하지못해 안달하는 일본이다. 그런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 그립다는 듯 그들 교육이 더 좋았다고 했다. 그것도 부총리라는 분이. 일본인들 오죽이나 기뻐했을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