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7위 재벌을 자랑하던 국제그룹이 지난 85년 급작스레 공중분해되자 유난히 말들이 많았다. 단순한 시장논리에 따른 해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 신발공장으로 출발했던 국제그룹은 70년대 산업지원에 힘입어 종합상사로 탈바꿈하면서 급성장한 그룹이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과 사업확장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공식적인 발표였다. 그런데도 항간에선 경제 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해서 두고 두고 논란이 되었다. 즉 국제그룹이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화 정도가 심하지 않았음에도 전격 해체된 것은 당시 전두환 정권에 밉보인 탓이라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꾸어 말해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정치자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진위야 어떻든 정치권과 재계의 관계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예도 꽤 드물성 싶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 땅의 웬만한 정치인과 재벌치고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자금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의 썩은 냄새에 질식해오던 터였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수천억원씩의 비자금을 챙길 수 있었던 것도 다 그같은 풍토 덕이었음은 물론이다.
수십년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당시 대통령은 “임기중에 절대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9년,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도 5년 째가 되는 지금, 이번엔 경제인들이 공개선언을 하고 나섰다. “정당하지 못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 법에 의한 정당한 정치자금만 내겠다”고.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선언까지 할 정도였다면 아직껏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가 횡행했다는 얘기로도 이어진다. 대통령 다짐이야 어찌됐든 안타깝게도 그런 게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재계가 더 이상 정치권에 불법적인 돈을 뜯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 정도 상황이라면 그 결심이 얼마나 잘 지켜질 수 있을까도 심히 염려스럽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던데.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손바닥도 마주쳐야
입력 2002-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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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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