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낙랑(樂浪)공주는 둘이다. 고구려 호동왕자에게 반해 자명고(自鳴鼓)를 찢어발김으로써 나라를 망치게 했다는 그 낙랑 태수(崔理)의 딸 낙랑공주와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다. 왕건은 신라 경순(敬順)왕이 항복해오자 맏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게 하고 정승에 봉하는가 하면 비운의 그를 달래기 위해 암자를 지어 머물도록 한다. 그러나 그는 아침저녁 산마루에 올라 신라쪽으로 돌아앉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린다. 그 눈물 어린 산이 바로 도라(都羅)산이다. 경순왕이 신라쪽으로 '돌아앉았다' 해서 붙여진 '도라'라니까 한자 '都羅'는 뜻과는 상관없는 '돌아'의 취음(取音)인 듯싶다. 아무튼 경순왕 그가 고려 경종 3년 눈을 감은 곳도 '영원히 지키겠다'는 뜻의 암자(永守菴) 그곳이었고 아내 낙랑공주가 새로 절(昌化寺)을 지어 그의 영정을 모신 곳도 도라산이었다. 마의태자가 구슬픈 가슴으로 휘돌아 금강산으로 발길을 돌린 곳 또한 그곳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돌아본 천도 후보지 중의 한 곳 역시 장단(長湍) 도라산이었다. '태조실록'의 기록처럼 그는 개성(松京)으로부터 천도할 곳으로 무악·안산(연희·신촌동)을 위시해 한양(南京), 계룡산, 파주 적성 광실원(廣實院), 임진현(臨津縣) 신경(新京), 그리고 도라산을 꼽았다. 그만큼 그곳은 명당이다. 조선조 이후 그 도라산 마루엔 봉화 신호를 위한 봉수대가 축조됐고 1986년엔 파주시 군내면 도라산 그곳에 최북단 전망대가 설치돼 개성 송악산과 김일성 동상, 금암골 협동농장, 장단역 기차 화통, 위장 선전 마을인 기정동 등이 고스란히 망원 렌즈에 잡힌다.
그런 도라산 역에서 한·미 정상이 연설을 하고 역사(驛舍) 침목에 'Bush(부시)'라는 서명까지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데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과연 도라산 너머 따뜻한 '남쪽나라'와 자유세계의 간절한 깃발을 향해 철철 녹아내리는 마음으로 '돌아앉느냐', 아니면 보내주는 햇볕만 쬐고 억하심정 엉뚱한 궤도만을 타려 하느냐 그게 관건이고 그게 궁금하다. <吳 東 煥(논설위원)>吳>
도라산 역
입력 200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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