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9월 초쯤으로 기억된다. 중앙아시아 북부의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에서 사뭇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곧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 이 나라에서 출마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모국어 즉 키르기스어 읽기 쓰기 말하기 시험을 치른 것이다. 그리고 자그마치 5명이나 이 시험에 불합격하여 입후보 자격을 상실하기도 했다.
소위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인물들이 모국어 시험을 치러야 할 형편이었으니 나머지 일반 국민들 수준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 마당에 자기네 언어 시험에 간신히 합격하고도 으스대는 모습이나, 또 떨어졌다고 불평하는 모습들이나 마치 한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거기엔 무작정 비웃을 수만도 없는 그들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수십년간 구(舊)소련 체제하에서 신음하며 모국어 대신 러시아어를 사용해야 했던 슬픈 과거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의 해체 덕에 간신히 독립한 게 그때 겨우 10년 안팎이었다.
우리도 일제(日帝)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하마터면 우리 말과 글을 영원히 잃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가 일제가 패망했고, 우리도 금세 잃었던 말과 글을 되찾았다. 그리고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누구도 다시는 감히 우리의 언어를 빼앗으려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의 삶과 언어 속에 드문 드문 박혀있던 일본어의 잔재도 거의 다 뽑혀져 나갔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국어실력도 이제는 결코 모자람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 모양이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어느 대학교수에게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국어실력은 100점 만점에 30점에 불과하며, 최고 명문대라 할 서울대 인문대 학생마저 34.24점에 그쳤다고 한다. 그것도 확률적으로 50점을 얻을 수 있는 양자택일 문제에서 나온 점수가 그 타령이라는 것이다. 이쯤되고 보면 키르기스스탄의 처지를 비웃거나 동정한다는 것부터가 차라리 민망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더 비참해지기 전에 무언가 대책이 나오긴 나와야겠는데….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