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의하지 않은 불투명한 정치자금은 제공하지 않겠다.” 지극히 당연한데도 정작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를 결의하자 항간에선 의견들이 분분했다. 우선 정치자금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결의까지 했을까 하는 동정론이 제기됐다. 그런가 하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정치권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괜한 헛공론에 그칠 게 아닌가 하는 회의론도 나왔다. 한편에선 기업 스스로의 반성과 자정(自淨)을 촉구하기도 했다. 불법 정치자금은 상당 부분 정치권의 요구와 기업들의 필요가 어울린 결과이므로 기업들도 자성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가운데 이번엔 정부 일각에서 자못 획기적인 제안을 하고 나섰다. 법인세의 1%를 정치자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정치권이 기업들로부터 일절 정치헌금을 받지 않고 선거공영제로 갈 것에 합의해줘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혼탁한 작금의 정치현실을 감안해 볼 때 얼핏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하다. 지난 해 기준으로 법인세의 1%라면 1천700억원 정도인데, 그만한 자금으로 정치판이 깨끗해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싶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1천700억원 정도로 정치인들의 성이 찰까 하는데 있다. 흔히 선거 때만 되면 ‘조(兆)’단위 이상이 운위되는 게 우리네 정치 현실이다. 지난 97년 대선 때 선관위가 정한 후보 1인당 자금사용 상한액만 해도 300억원이 넘었었다. 게다가 올해는 연말 대선에다 여름 지방선거까지 겹쳐 있다. 어림잡아도 1천700억원 정도론 택도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법인세 보조는 보조대로 받고도 음성적 거래는 여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이 주머니 따로, 저 주머니 따로 차지 말란 법도 없다. 특히 가뜩이나 정치권을 불신하는 국민들이 세금 활용에 선뜻 찬성할까도 의문이다.
그나 저나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안까지 나왔을까. 기업들이 더 이상 불법자금을 뜯기지 않겠다고 결의한 것이나 세금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나, 우리 말고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오죽 답답하면
입력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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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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