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 문학이 낯뜨겁다. ‘반도 삼천리도 기쁨의 일장기(日章旗) 바다/ 무한한 영광과 희망의 위대한 새해여’… 성씨와 이름까지 ‘창씨개명’한 춘원 이광수(香山光郞)는 매일신보 44년 신년호 축시에 이렇게 썼다. '오오 폐하의 股肱(고굉)이여/ 천명을 받들고 어서 나서라’며 이 땅의 청년들을 일본 왕의 팔다리(고굉)라고 한 것은 파인 김동환(白山靑樹)의 태평양전쟁 지원병 격려 시(매일신보 43년 11월6일자)였고 노천명도 같은 신문 42년 2월19일자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라고 읊었다.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 산천이여’(徐廷柱)도 있고 ‘반도의 아우야 아들아 나오라/ 님께서 부르신다/ 용감한 전위의 부대로 너를 부르신다’(金八峰)도 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에서 엊그제 추가한 16명의 ‘친일파’ 작품 역시 그렇다. 모윤숙은 42년 2월21일자 매일신보에 ‘大亞細亞의 巨火/ 大和魂(대화혼)의 칼이 번뜩이자/ 사슬은 끊기고’라고 썼고 김활란은 ‘신시대’ 42년 12월호에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바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나라의 것을 나라가 쓰는 것이지 내가 바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잠깐 맡았던 내 아들이 훌륭히 자라서 나라가 다시 찾아가는 것’이라며 ‘나라의 아들론’을 펼쳤다. 현제명(玄濟明) 역시 ‘찬란한 일장기는 赤道의 일광에 빛나며/…’(동양지광 42년 3월호)라 썼다.
 법학자 이항녕(李恒寧)씨는 91년 “하동군수로 있던 일제 때 친일 행적을 사죄한다”고 말했고 미당(未堂)선생 또한 친일문학을 자인(92년)했다. 이제 ‘친일 진상규명 특별법’까지 만든다니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그런데 자의와 타의, 자의 반 타의 반, 협박 공갈 등 친일 동기와 행적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극단적인 말로 당시 창씨개명한 사람과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매천 황현(黃玹) 등처럼 자살을 했거나 면암 최익현(崔益鉉)처럼 굶어죽지 못한 모든 사람이 친일파가 아니었을까.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