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로이어(Philadelphia Lawyer)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탁월한 논리와 명석한 분석력을 갖춘 법률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반면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이 단어가 이런 의미로 사용된 배경에는 1776년 제퍼슨이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이후 1787년에는 미국 12개주 대표 55명이 이곳에 모여 연방헌법을 제정, 미 합중국 탄생의 역할을 함으로써 미헌법의 메카가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후 이곳에서는 수많은 유능한 법률가가 배출됐다. 이 때문에 필라델피아는 미국이 유럽의 구질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인들의 정신적 뿌리이자 미국 민주주의의 성지이기도 하다.
지금 유럽에서는 21세기 들어 이와 아주 흡사한 의미있는 한 회의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진행중이다. 지난달 말부터 약 1년6개월동안 예정으로 EU(유럽연합) 15개 회원국과 13개 가입 후보국등 28개국 대표 105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고 있는 EU미래회의가 그것이다. 브뤼셀은 지난 1958년 원자력을 주제로 한 전후 최초의 국제박람회가 열린 상업 도시로 현재 EU 및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본부가 있는 유럽의 수도구실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 회의에서는 지난해 유로화(貨)로 화폐통합을 이룬 EU가 21세기에는 하나의 유럽이란 정치 통합을 이루기 위해 유럽헌법을 기초하고 정치 경제 사회 안보등 50여개 항목의 의제를 논의한다. 미 연방 헌법을 제정한 필라델피아회의가 철저한 미공개 비밀회의였던데 비해 EU미래회의는 TV 인터넷을 통해 모두 공개되는게 다른 점이다.
EU는 이와 함께 3월 들어 프랑스의 프랑, 독일의 마르크, 네덜란드의 길더등 기존 통화사용을 전면금지, 유로화만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경제 통합에 한발짝 더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EU개혁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등 강대국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일부 국가의 불만도 있긴 하지만 21세기 EU정치 통합은 이제 가속이 붙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회의결과 유럽헌법 기초안이 나온다면 브뤼셀은 유럽의 필라델피아로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세계는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