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체계의 호환성을 의미하는 한·미연합전력의 상호 운용성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해 11월 미국의 국방장관을 비롯한 몇몇 고위인사들이 느닷없이 강조했던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간의 한·미 특수관계로 보아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FX)사업을 둘러싸고 국내외적으로 초미의 관심이 쏠려 있던 때인지라 결코 심상하게 들리질 않았었다.
2008년까지 40대의 최신예기를 도입하려는 FX사업은 미래전의 핵심전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국책사업이다. 또한 미국과 프랑스, 유럽 4개국 컨소시엄 및 러시아의 4개 업체가 수주전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 사업은 무려 4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기도 하다. 당연히 국제적으로 내로라 하는 무기 수출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로비도 치열해지고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한 온갖 루머도 속출하게 마련이다. 우리 정부의 기종 선정작업도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고 자칫하면 엉뚱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FX사업이 결국은 잡음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것도 내달 중순 께면 기종 최종선정이 발표된다고 하는 막바지 시점에서 문제가 터졌다. 국방부의 급작스런 지시 때문이다. 국방부가 지난달 15일 기종별 평가작업을 벌이고 있는 공군과 국방연구원, 국방과학 연구소 등에 돌연 평가기준의 변경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국방부의 진의가 어디 있든간에 우선은 외압설 특혜설 등 갖가지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기종선정 작업이 막바지에 달한 시점에서 굳이 평가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부터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국방부의 지시 시점이 지난 달 한미정상회담 직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국방부로선 ‘까마귀 날자 배(梨) 떨어진 격’이라며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정녕 그렇다면 참 딱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더 더욱 명쾌한 해명 및 규명이 있어야겠다. 국방부가 진정 억울한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