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홍인종의 복수’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침략한데 대한 보복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이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현대 문명세계에서 담배를 유익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 같다. 흡연이 폐암 폐기종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등 무서운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쯤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 등 서구지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흡연피해를 배상하라는 배상청구 소송이 심심찮게 제기되기도 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다투어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공공장소 등에서의 금연은 기본이고, 흡연 억제를 위해 담배소비세를 대폭 올리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미국같은 나라는 담배를 아예 마약수준의 건강 유해물로 규정, 흡연을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일부 선진국을 제외하곤 좀처럼 흡연인구가 줄지를 않는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선 청소년 및 여성들의 ‘흡연 전염병’이 급속히 번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세계 2위의 담배회사 회장까지 마침내는 담배의 유해성을 솔직히 시인했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BAT)’의 마틴 브로턴 회장이 최근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저녁식사 후 가끔 시가를 피우는 것 외엔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면서 “담배와 관련된 질병에 걸릴까봐 이런 결심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식들이 어렸을 때 몰래 담배를 피우려 하는 것을 목격했다면 몸에 좋지 않으므로 피우지 않는 게 좋다고 권고했을 것”이란 말도 했다 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여태껏 그 많은 담배를 제조해 팔아오고 있는지 참 모를 일이다.
하기야 자기네 국민에겐 마약과 같다고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다른 나라 국민들에겐 자기네 담배를 더 많이 피우라고 갖가지 압력을 가하는 나라도 있는데, 일개 담배회사 회장의 몰염치쯤이야 탓해 뭣하랴. 해로운 걸 번연히 알면서도 피우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