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유난히도 자유무역을 강조해온 나라다. 지난 날들이야 어떻든 적어도 최근 몇년 간은 그랬다. 어쩌다 다른 나라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시장개방을 주저할라 치면 가혹하리 만큼 가차없는 공격을 퍼붓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우리 나라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갖가지 분야에 걸쳐 줄기차게 수입개방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농축산물시장을 비롯, 자동차시장 금융시장 보험시장 하다못해 담배시장 등 어느 한 분야라도 비껴가는 곳이 없다.
심지어 7~8년 전쯤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우리 정부에 “자동차시장 개방 속도가 너무 느리다”면서 “관용차로 미국산 승용차를 구입하라”고 어거지를 쓴 적도 있다. 그때 미키캔터 USTR 대표는 관용차 구입과 함께 한국 정부가 국내 언론에 주기적으로 외제차 인식 제고를 위한 발표를 할 것과 상공자원부내에 자동차에 관한 ‘민관특위’를 설치하라고까지 요구했었다. 자기네 주(州)정부에조차 하기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 해 여름엔 우리 정부가 수입담배에 40%의 관세를 부과하려 하자 압력을 가해 10%로 대폭 낮추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쯤되면 좋든 나쁘든 자유무역이 그들의 변할 수 없는 신조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주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이유로 긴급수입제한조치(safe guard)를 발동, 향후 3년 동안 수입 철강제품에 최고 3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토록 자유무역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세계경제를 주물러온 그들이었건만, 역시 눈앞 이익을 위해선 신조도 무엇도 없는 모양이다. 이런 걸 두고 독불장군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필요에 따라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카멜레온이라 해야 할는지.
그나 저나 대미(對美) 철강수출국 중 다섯번째 수출대국이라는 우리 나라의 피해가 여간 심각하지 않을 것 같아 큰 걱정이다. 물론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모양이지만, WTO인들 뾰족한 수가 있을까.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