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다. 베니스의 젊은 상인 안토니오가 친구를 위해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해 곤욕을 치른 이야기다. 하마터면 꼼짝없이 살 한 파운드를 잘라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이 이야기는 당시(16~17세기) 영국사회의 고리대금업과 유태인에 대한 증오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 이후 흔히 ‘샤일록’이라는 이름은 악의 상징으로, 또 고리대금업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인식돼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주는 교훈으로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빚을 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여겨진다.
‘미국 대학생 3명 중 2명은 대학을 다니려면 빚을 내야하고, 10명 중 4명은 졸업하고 취업해서도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에 앉게 된다’고 최근 한 외신(外信)이 전했다. 지난 1992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에선 대학생들의 부채가 두배로 늘어나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육을 위해 지는 빚이 평균 1만7천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중 3분의 1은 부채액이 2만달러를 넘어섰다고도 한다.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3천만원에 가까운 거액이다. 아무리 세계 제1의 부자 나라라지만, 학생 신분으로 이 정도 빚이라면 헤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듯 싶다.
우리 나라의 대학생들 역시 학자금 대출 등의 폭이 꽤 넓은 편이라 부채액수가 결코 만만찮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학생들 부채가 학자금 대출 뿐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상당수의 청소년 대학생들이 몇개 씩의 신용카드를 활용하면서 적지않은 카드빚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것도 학자금 보다는 유흥자금 등에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어느 TV프로그램에선 청소년 및 대학생들의 카드빚 사례를 수집하고 있기도 하다.
이쯤되면 빚더미에 올랐다는 미국 대학생들은 차라리 행복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샤일록 공포’가 그들이라고 쉽게 비껴갈 리는 없겠지만.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대학생들의 빚
입력 2002-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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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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