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순 어느날, 중국 연길시 시외버스터미널에 남루한 차림의 성인 3명과 어린이 5명 등 8명의 탈북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영하10도의 강추위와 초조함에 떨면서 연방 주위를 살폈다. 일행의 리더격인 40대 여성은 북한의 명문대인 김형식 사범대를 졸업하고 한때 작가생활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탈북하자 뒤이어 아들 및 다른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뒤 거의 1년째 이러한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연길에 온지 두달만에 자신도 모르게 중국남성에게 6천500위앤(80만원)에 팔렸고 석달만에 기적적으로 탈출했으나 이번엔 조선족 사기꾼에게 걸려 다시 인신매매를 당했다. 다시 2개월만에 빠져나와 다행히 한국의 한 종교단체에 의해 구출됐고 지금은 한국에 가기위해 1차목적지인 내몽골에 가기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연길에서 내몽골까지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보다 더 먼길. 이러한 내용은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한 탈북가족의 북한탈출 기록이다. 2년전부터 중국공안당국의 탈북자 단속 및 강제송환이 급증하자 이처럼 탈북 및 한국행 루트가 제3국으로 2차탈출을 해야 하는등 더욱 험난해졌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이 탈북자를 단속, 강제송환한 북한주민의 수는 지난 99년말 현재 5천여명에 이르고 지금은 이보다 두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북한을 탈출,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해 한국망명을 요청한 25명의 북한주민도 외국 민간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지금쯤 연길에서 배회중인 40대 여성의 가족처럼 머나먼 제3국루트를 찾느라 목숨을 걸었으리라.
'우리는 작년에 자유와 식량을 얻기 위해 탈북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송환됐고 혹독한 고문과 억류생활에 시달리다 재탈북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외국인의 도움으로 여기에 모였습니다.…다시 북한에 송환되면 우리는 자살할 준비도 돼 있습니다'. 북한주민의 삶에 대한 처절한 절규앞에서 정부는 비록 늦기는 했지만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하는 탈북 주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탈북주민의 운명
입력 2002-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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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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