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는 대개 그 사는 곳에 따라 두가지로 구분된다. 곰쥐 생쥐 등 주로 인가에 사는 쥐를 집쥐라 한다면, 논밭 같은 경작지나 초원에 서식하는 쥐는 흔히 들쥐라 부른다. 그런데 이 들쥐에도 많은 종류가 있어 크기 형태 생태 등에 따라 갖가지 이름들을 갖고 있다. 갈밭쥐 쇠갈밭쥐 대륙밭쥐 비단털쥐 등줄쥐 메밭쥐 등이 주로 한국 땅에 서식하는 들쥐 이름들이다.
집쥐도 그렇지만 들쥐 역시 사람들에게 굄을 받지 못하는 짐승 중 하나다. 우선 들쥐들은 떼지어 다니면서 농작물이나 삼림의 묘목 등에 큰 피해를 끼친다. 게다가 치사율 높은 무서운 전염병인 유행성출혈열을 비롯, 갖가지 병균을 옮겨 더 더욱 미움을 산다. 이 들쥐들에겐 무슨 까닭인지 우르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 떼거리 습성이 가끔은 사람에게 비유되어 경멸적 험담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 지난 1980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이 우리 국민을 가리켜 들쥐와 같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아마도 ‘12·12사태’ 이후 권력실세로 급부상한 신군부에 많은 이들이 다투어 줄서기 하던 꼴불견을 비아냥댄 표현이었겠지만, 우리 국민성을 싸잡아 ‘들쥐떼’에 비유한 것은 여간 큰 모욕이 아니었다. 의식있는 이들이 크게 분노했고 하마터면 심각한 반미감정으로까지 번질 뻔 했던 기억이 새롭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예의 ‘들쥐론’이 또 거론되어 화제다. 얼마 전 대한상의 회장이 “우리 기업들은 좋다고 하면 충분한 검토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장을 어지럽힌다”면서 이른바 ‘들쥐떼 근성’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엔 누구 하나 감히 반박을 못하는 것 같다. 하기야 그 옛날 가발산업을 비롯, 중화학투자붐 반도체붐 그리고 최근의 벤처붐 등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하나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몰려들었다가 다 같이 망했던 기업들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반박은 커녕 수치심이라도 느낀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조금쯤 반성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