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잘해보자고 한 게 되레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게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강원도 영월 정선 평창을 끼고 흐르며 ‘마지막 천혜의 비경’ ‘생태계의 보고’라 불리던 동강의 요즘 형편을 보면 그 말이 더욱 실감난다. 그토록 강을 살리자며 댐 건설 계획까지 백지화 시켰건만, 그 이후 동강은 허연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강이 돼버린 것이다.
수달 쉬리 어름치 등 천연기념물 13종과 멸종위기 23종 등 모두 1천838종의 동물과 흰꽃절굿대 백부자 등 희귀종을 포함한 952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동강은 국내 최대의 ‘생태계 보고’로 평가받아 왔다. 여기에 석회암동굴 77개와 모래톱 50여개, 뱀 모양의 사행하천 등 천혜의 비경이 어우러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지역주민을 비롯, 시민단체 등이 그토록 댐 건설을 극력 저지했고 ‘동강 살리기’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동강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댐 건설 논란이 일면서 특유의 비경들이 널리 알려져 탐방객 관광객들이 급증, 급속한 생태계 파괴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산비탈을 깎아내면서 길을 닦고 다리를 놓았으며, 일부 래프팅(급류타기)업체들의 몰지각한 상술과 무분별한 야영객 낚시꾼 등의 발길로 동강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쓰레기와 오물로 강물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 지난 해 여름엔 물고기들이 떼죽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한때 손꼽히는 1급수 청정하천을 자랑하던 동강이 어느새 탁한 2급수로 전락해버렸다. 어쩌면 ‘동강 살리기’운동이 차라리 동강을 죽이는 계기가 돼버렸다는 느낌마저 준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환경부와 강원도가 ‘동강 되살리기’에 나섰다. 6월부터 동강 일대를 단계별로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키로 했다. ‘천혜 비경’ 파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동강이 되살아날 수만 있다면 무얼 더 바라랴. 우선은 기대를 걸어볼밖에….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아이러니
입력 2002-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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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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