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는 '부패 선거구'라 불리는 선거구가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역의 인구분포가 변했는데도 선출되는 의원수는 옛날 그대로 둔 곳들이었다. 예컨대 신흥 공업도시로 성장한 맨체스터는 15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도 옛날 규정에 얽매여 단 한명의 대표자가 없었다. 이에 비해 유권자수가 7명밖에 안되거나 지반침하로 도시가 바다로 가라앉아 사람이 없는 선거구에는 각각 두명씩의 의원이 선출되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
이러한 불합리한 부패 선거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힘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 때문이었다. 지역구를 위해 의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의원을 위해 지역구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기득권은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웃지 못할 현상이 개선된 것은 거의 80년 후인 1832년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추태가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는 기초의회의 선거구 인구를 부풀리기 위해 행정구역을 억지로 조정하는가 하면 주민의 위장전입등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가 최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을 개정해 기초의원 1명을 뽑을 수 있는 선거구의 최소인구 기준을 동(洞)은 5천명에서 6천명으로, 섬지방이외의 면(面)은 의원1명에서 인구 1천명이상인 경우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인천 광주 울산 충북 경남 강원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여론 조사결과 지방 자치발전을 위해 가장 절실한 문제가 주민참여(35.8%)와 의회의원들의 비리근절(29.4%)이라 지적한 마당에 이를 외면하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쯤 되면 지역 주민과 선거구가 의원님들을 위해 존재했던 18세기 영국의 부패 선거구와 다름없다. 하기야 여야를 막론하고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 조차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국민들을 들러리 세우려 하고 있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정치 현상이고 보면 기초의회 의원이라고 해서 뭐가 크게 다르겠는가.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부패 선거구
입력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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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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