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는 흑인이었다'는 책이 90년대초 파리에서 나왔지만, DNA 분석 결과 그게 '사실일 것'이라는 학자들도 있다. 94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5개 대륙인 148명을 뽑아 인종간의 마이크로 세털라이트 변이를 조사한 결과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최초로 분화해 나온 인종은 바로 아프리카인이었다”는 주장을 편 사람은 미국 텍사스대 의학센터 보쿠크박사와 뉴욕주립대 다이앤 웨더박사였다. 예수도 금발 고수머리에 파란 눈의 백인이 아닌 초콜릿색 흑인이었다는 주장이 이미 100여년 전 헨리 터니 주교를 비롯해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통 의상의 흑인 예수 초상화를 걸어놓고 오르간 대신 드럼과 기타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는 교회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비느하스(Phinehas)'가 '흑인'이라는 뜻이니까 예수를 그의 후손으로 믿을지도 모른다.
악성(樂聖) 베토벤 또한 흑인이었다는 주장이 91년 런던에서 창간된 흑인 잡지 '프라이드'에 나왔다. 그런 위인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전세계 흑인의 우상은 적지 않다.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 팝송의 제왕 마이클 잭슨, 흑인 영가(靈歌)의 마리안 앤더슨,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남아공의 태양 만델라 등. 한데 그들의 뒤에 줄을 설 남녀 배우가 등장해 온통 화제다. 엊그제 아카데미상 사상(74회) 최초로 남녀 주연상을 받은 할 베리와 덴절 워싱턴이다. 모친이 백인인 베리는 50% 흑인이지만 흑인은 흑인이다. 그래서 영광의 눈물도 흑인 몫으로 흘렸다.
미국 영화의 흑인이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뚱보 유모 아니면 가정부나 범죄자로 나오는 게 고작인 니그로, 니거(Nigger)의 천박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런 흑인 배우의 위상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으로 한껏 끌어올린 배우가 '흑과 백' '밤의 열기 속으로' '들에 핀 백합' 등의 시드니 포이티어였다. 이름도 거창한 이번 수상자 '워싱턴'은 포이티어 이미지 계승자이기도 하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낸다.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흑인의 우상
입력 200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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