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토,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는데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를 마시고나서 했다는 이 말은 ‘빚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갚아야 한다’는 교과서적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빚을 제때 갚지 못해 하마터면 살 한 파운드를 떼어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는 빚을 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기도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신용평가기관인 모건 스탠리사가 의미심장한 경고를 했다. “한국의 가계빚에 신용 버블(거품)이 있으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조만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계대출 비중이 최고 수준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경고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의 가계빚은 분명 위험수위에 달해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은행 통계가 이를 반증한다. 한은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 전체의 가계부채는 전년보다 무려 28%나 늘어난 341조7천억원으로 가구당 평균 2천330만원의 빚을 진 셈이라 한다. 우선은 부채의 규모도 문제지만, 그 증가속도가 보통 심각하지 않다. 지난 1998년 말 약 183조원이던 가계빚이 불과 3년만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가계빚이 급증하는 건 금융기관의 경쟁적인 가계대출과 신용카드사의 무분별한 카드발급 등이 주요인이라고들 한다. 그나마 지금까진 저금리 상황이라 그럭 저럭 견디어온 모양이지만, 언제까지 저금리만 믿을 수도 없다. 그렇잖아도 지금 경기가 저점을 지나 상승국면으로 진입, 금리상승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리가 1%만 올라도 가계 전체의 이자부담은 연간 3조4천억원이 더 는다. 이렇게 고금리 부담이 현실화되면 결국 개인파산 및 신용불량자 대폭 양산은 물론 금융기관 부실도 불을 보듯 뻔하다.
‘빚이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더니 흥청 망청 몇년에 자칫 제2의 IMF한파를 또 몰아오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두렵기만 하다. 그때가면 옛날같은 ‘금 모으기’도 더는 효력이 없을 듯싶은데, 무슨 다른 묘책이라도 준비됐는지 모르겠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