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토끼는 3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말이 있다. 맹수에 쫓길 것에 대비해서 미리 안전지대를 충분히 마련해 놓는다는 말이다. 이말은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의 충복인 풍훤(馮芋)이라는 자가 그의 주군을 위해 한 말이다. 풍훤은 평소 맹상군이 영지인 설(薛)의 백성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도록 각종 혜택을 줘 그의 주군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에 대비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나라 임금과 적국인 위나라에도 맹상군이 명재상임을 소문내는 등 만일에 대비한 3곳의 안전판을 마련해 맹상군이 노후를 편히 지내는데 공을 세웠다.
최근 인천 공항공사에 무더기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져 노조측의 반발이 일고 있다. 상임이사 6명중 4명이 정부 관료출신이고 특히 사장과 부사장 등 3명은 항공업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비전문가로 이러한 낙하산 인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게 노조측의 주장인 것 같다.
IMF(국제 통화기금) 환란 사태이후 공무원, 기업, 금융계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작업이 이루어졌지만 그때마다 말썽이 된 것이 낙하산 인사다. 공직에서 물러난 공무원들이 대거 공기업의 빈자리를 차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4~5월 새로 선임된 15명의 공기업 사장 및 공단 이사장의 경우 3분의 2가 전문성과 관계없는 정계, 관료, 군, 경찰 등의 출신인사들이었다. 올들어 지난 2월의 한 조사에서도 20개 주요공기업 사장과 감사 40명중 90% 36명이 여권정치인과 관료출신이었고 금융권에도 재경부 관료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실정이고 보니 구조조정으로 자리에서 밀려난 공기업 근로자들의 공무원들에 대한 분노감은 최악에 이른 느낌이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차지한 공기업 임원들이 자리를 마련해준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러고서도 공기업의 경영개혁이 가능한 일인지, 또 이것이 사회갈등과 국민들의 정부 불신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퇴직에 대비, 제나라의 풍훤이 말한 토끼굴을 파는데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스럽다. <成定洪(논설위원)>成定洪(논설위원)>
낙하산 인사
입력 2002-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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