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삼베옷은 죽은이의 넋을 기린다고 믿어져왔다. 그래서 상(喪)을 당하면 가족과 친지들이 삼베옷을 입고 애도의 뜻을 표해왔다. 또한 망자(亡者)에게도 삼베옷으로 갈아입혀야 험난한 저승길을 편히 갈 수 있다고 여겼다. 삼베옷이라면 상복(喪服)과 수의(壽衣)부터 떠올리게 되는 건 다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삼베를 수의로 쓰게 된데는 보다 실질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 즉 삼베엔 고유의 항균기능이 있어 삼베옷을 시신에 입히면 뼈가 썩지 않고 건조되어 누런 황골(黃骨)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가 엿보인다.
삼베는 상복과 수의 외에도 우리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직물이다. 사실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오기 전만 해도 삼베는 서민들의 평상시 옷감으로 거의 유일한 천이었다. 물론 그때도 비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단옷 같은 것이야 왕족 귀족 등 상류층에서나 입을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또 삼베는 옷감뿐 아니라 이불과 요 등으로 긴요하게 쓰였고, 부패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밥보자기나 행주로도 널리 사용됐다.
곳곳에 삼밭도 많았다. 시골에 내려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여기 저기 널려있는 삼밭과 길쌈하는 여인네들의 정겨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난 1976년 대마관리법이 발효되면서 삼의 재배가 엄격히 규제되었고, 자연히 그 흔하던 삼밭도 길쌈하는 여인네들의 정경도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삼 줄기와 잎에 마리화나로 알려진 마취성 물질이 함유돼 환각제로 악용되는 사례가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껏 상복과 수의용으로 엄청난 양의 삼베가 필요하다. 하지만 삼 재배를 제약받다 보니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형편이다. 공연히 쓰지 않아도 될 곳에 거액의 외화를 낭비하는 셈이다. 게다가 삼베가 귀해지면서 가격마저 턱없이 비싸졌다. 대마 흡연자들 탓에 애꿎은 상가(喪家)들만 애를 먹는 꼴이다. 그런데도 대마 중독자는 늘어만 가니 사람은 사람대로 버리고 돈은 돈대로 버리고,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