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마안강 푸른 물에…'의 김정구(金貞九)와 '우울랴고 내가 왔던가…'의 고운봉(高雲峰)에 이어 '아아 신라의 바암이여/불국사의 종소리…'의 현인(玄仁)까지 13일 밤 그의 '불국사 종소리' 여운처럼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일본 우에노(上野)음악학교(現 東京藝大)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가 국민가요 '신라의 달밤'을 처음 부른 게 1947년이었으니까 장장 55년이다. '좋은 노래는 세 번 불러도 좋다'는 독일 속담도 있지만 세 번 아니라 백 번, 천 번을 불러도 좋은 게 '아아 신라의 밤…'이다.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인도의 향불' '꿈이여 다시 한 번' '베사메무초' 등 히트곡도 많지만 '현인' 하면 역시 '신라의 달밤'이고 그의 노래비(碑)에 새겨질 노래 또한 그 노래다.
 우리의 '대중가요 50년사' 히트곡 50곡 중 그 8위가 '신라의 달밤'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번안가요 '베사메무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단골 노래였고 코미디언 이주일도 즐겨 부른다지만 '아아 신라…'에는 비교가 안된다. 모사(模寫)하기 쉬운 그의 독특한 창법, 약간 혀짧은 소리에 턱을 위아래로 떨며 흔드는 비브라토(음 흔들기) 또한 그 노래의 장수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제 때는 상하이(上海)에서 샹송과 칸초네를 불렀고 광복 후 귀국해 7인조 악단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밤 늦게 무대 쇼가 끝나면 빨간 상의에 하얀 넥타이 차림 그대로 김정구, 고운봉 등과 서울 청진동 해장국집을 찾는 몇십년 단골이기도 했다.
 '언제나 희망을 갖는 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죽는다(이탈리아 속담)'고 했던가. 84세의 천수(天壽)를 다한 그는 눈을 감으면서 무슨 가락을 흥얼거렸을까. 멕시코시티 가리발광장 양편엔 그곳 전설적인 여가수 롤라 벨트라와 국민가수 후안 가브리엘 등 20여명의 동상이 화려한 전통의상 '차로'와 챙 넓은 모자 '솜브레로' 차림 그대로 서 있다. 우리의 김정구, 고운봉, 현인 등의 동상 또한 우리 땅 '노래의 거리' 어디쯤에 세워져야 하는 게 아닐까.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