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5~4세기 그리스의 아테네는 지중해 지역에서 단연 학문의 중심지, 정치의 중심지였다. 특히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아테네 시민들은 정치적인 활동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런데 아테네 민주주의가 한창 화려하게 꽃피웠던 그 시기, 아테네에서는 다른 곳엔 없는 특이한 법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른바 정치적 무관심자, 방관자를 처벌하는 법이었다. 솔론의 개혁 때 만들어졌다는 이 법은 혁명이나 정치투쟁 등이 일어날 때 어느 편에도 참여하지 않는 자는 시민권을 박탈하도록 했다고 한다.
실제로 “너 자신을 알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진리를 탐구하던 소크라테스가 ‘신에 대한 불경죄’등으로 독배를 마셔야 했던 이면에는 그의 정치적 무관심도 한몫 거들었다는 설이 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돈을 번다든가, 정치활동을 한다든가, 또는 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 등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한다. 나름으로야 진리를 탐구하느라 다른데 신경쓸 여념이 없었다는 변명이었겠지만, 유난히 정치성이 강했던 당시 분위기로서는 분명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음직 하다.
그같은 배경을 반영하듯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는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정치적 방관자를 힐난하기도 했다.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 뿐 아니라 공적인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무관심한 자로서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올 한해에만 우리 국민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선거를 두번이나 치르게 된다. 6월의 지방선거와 12월의 대통령 선거가 그것이다. 자연히 국민들의 관심이 양대선거에 흠뻑 쏠릴만 하다. 하지만 역대 선거들에서 보아왔듯이 이번 양대선거에서도 상당수의 투표 포기자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지레 걱정이 앞선다. 페리클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쓸모없는 자들이 되는 것인데, 과연 그들은 자진해서 쓸모없는 자들로 전락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정치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