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또 한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는 깜짝쇼를 벌였다.
그는 지난 해 8월에도 종전 기념일인 15일을 살짝 피해 13일 기습적으로 참배함으로써 이웃 국가들에 불쾌감을 준 적이 있다. 이번 역시 5~6월의 월드컵축구 한·일 공동개최, 9월 중·일수교 30주년 기념행사 등으로 올해 참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을 여지없이 뒤엎고 휴일 아침을 기해 마치 도둑처럼 해치웠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들마저 ‘돌연 참배’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 때 천황중심 체제의 기틀을 닦는 과정에서 전사한 관군들을 기리기 위해 1869년 창건된 도쿄 초혼사(招魂社)가 그 효시다. 총면적이 9만9천㎡나 되는 이곳엔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청일, 러일, 중일전쟁 등 11개 전쟁의 전몰자 246만여명이 군신(軍神)으로 안치돼 있다. 태평양 전쟁 패망 이후 연합국 총사령부에 의해 국가 신도가 폐지되면서 막강한 국가기관에서 일개 종교법인으로 전락했으나, 여전히 일본 군국주의가 숨쉬고 있는 시설로 지적되는 곳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몰래 합사되면서부터는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에 시달렸던 한국 중국 등의 불쾌감과 경계심을 한데 모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총리를 비롯한 정부 책임자들이 이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곧 A급 전범들을 참배하는 게 되고, 이 것이야말로 치떨리는 군국주의로의 회귀 내지는 동경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기에 역대 총리들은 야스쿠니를 참배할 때마다 이웃 국가들의 눈치부터 살폈다. 그러면서도 국내 극우 보수주의자들 비위를 맞추느라 도둑처럼 슬쩍 참배를 하고선 주변국들 반응을 슬금슬금 엿보곤 한다. 꽤나 희극적이다. 이번 역시 기습적으로 일을 저지른 뒤 목을 잔뜩 움츠린 채 한국 중국 등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더할 수 없이 불쾌하면서도 일면 딱하다는 생각도 든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딱하기도 하고
입력 200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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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2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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