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헌안(憲安)왕이 화랑의 우두머리인 국선(國仙) 김응렴(金膺廉)에게 물었다. “낭(郞)은 국선으로 나라 안을 두루 살폈다는데 그 중 가장 모범이 될 만한 것 세 가지만 말해 보라.” “예. 첫째는 남의 윗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인데도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 둘째는 남보다 부자인데도 검소한 옷차림을 하는 사람, 셋째는 권세가 있으면서도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 명답 점수로 부마(임금의 사위)가 됐다가 훗날 권좌에 오른 47대 경문(景文)왕이었다.

'도적질을 하더라도 사모(紗帽) 바람에 거드럭거리고 망나니짓을 하더라도 금관자(金貫子) 서슬에 큰기침한다'고 했다. 나쁜 짓을 하고서도 권세 있고 돈 있는 유세로 큰소리친다는 뜻이고 아무리 작은 권세라도 그렇다는 말이다. 굴람 칸 파키스탄 대통령의 침실과 목욕탕 청소부가 93년 3월31일 구속됐다. 대통령의 측근임을 과시, 1천100만루피(약 4억원)를 예금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하긴 대통령 침실과 목욕탕 청소부라면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 사인가. 그러니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의 운전기사였다가 93년 12월 장관급인 대통령 보좌관이 된 바홀프스키 같은 사람의 우쭐거림이야 오죽했을 것이며 그의 통장은 또 얼마나 두둑해졌을 것인가.

권세의 '권(權)'자는 기세와 힘을 뜻하지만 저울을 상징한다. '권칭(權秤)'이 저울이고 '권형(權衡)'이 저울대, '권도(權度)'가 저울과 자(尺)다. 따라서 권세란 조금도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는 평형과 정확이 본질이고 생명이다. 그러나 저울을 재는 것은 사람의 손(주먹)이라 하여 '권석(拳石)'이고 그런 사람을 '권흉(權兇)'이라 한다. 딴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저울대(권세)를 잡았을 때 그 한쪽 끝에 돈 뭉치만 실리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무슨무슨 '게이트'마다 배후로 의심받던 여권의 한 실세가 검찰에 불려갔다. '증거 포착'과 '돈 줬다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는 양쪽의 드넓은 갭이 과연 어떻게 좁혀질지 궁금하다. <吳東煥(논설위원)>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