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역사로 치면 불과 220여년밖에 안되는 미국은 그러나 공화정치의 역사는 그 어느 나라보다 길다. 하긴 18세기 후반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줄곧 공화정을 이어왔으니 일러 무엇하랴. 긴 공화정 덕분일까, 미국에는 백악관을 떠난 뒤에도 나름대로의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전직 대통령들이 꽤 많다.

우선 3대 제퍼슨 같은 이는 퇴임 후 17년간 활동했는데, 고향에 버지니아대학교를 세우고 직접 총장으로 봉직하면서 오늘날 손꼽히는 명문대학으로 키웠다. 6대 애덤스는 17년간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노예해방운동을 펼쳤다. 또 27대 태프트는 예일대 법대교수로 재직하다가 연방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그밖에도 퇴임 후 상원의원이 된 앤드류 존슨, 4년 후 다시 대통령에 선출됐던 클리블랜드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주목받을 만한 이는 아무래도 카터일 것 같다. 1980년 재선에 실패한 그는 재임 중엔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이었으나, 퇴임 후엔 ‘제일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퇴임 후 그는 중동평화회담 등을 위해 동분서주했는가 하면, 남북한을 교차 방문하면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애쓰기도 했다. 또한 무주택 빈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자선활동을 벌이면서 세계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자신도 카터처럼 되기를 원했던 클린턴은 지난해 1월 퇴임 후 아직 이렇다할 활동이 없으나, 조만간 TV 아침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설 것이란 소식이다. 아마도 전직 대통령이란 권위 속에 묻히기보다는 국민들과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에서도 모두 7명의 전직 대통령이 나왔고 그중 4명이 생존해 있다. 그런데 공화정의 역사가 50여년밖에 안돼서일까, 아직은 카터나 제퍼슨 애덤스 등과 같은 그럴듯한 업적을 쌓은 이들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국민들과 좀더 가까워지려고 특히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거의 언제나 뉴스의 초점이 되곤 한다.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