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어느 겨울밤, TV를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들은 놀라움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화면에 비쳐진 ‘북한 꽃제비들’, 즉 굶주림 끝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참혹해 보여서였다. 얼어터진 맨발에 뼈만 앙상한 맨몸을 거의 드러낸 누더기 차림으로 장마당을 이리 저리 떠돌던 아이들. 추위에 오들 오들 떨면서도 행여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라도 있을까 싶어 시커먼 시궁창을 가는 손가락으로 헤집던 모습들. 차마 더는 지켜볼 수가 없어 차라리 채널을 돌려버린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저것이 정녕 핏줄을 나눈 동포 어린이들의 모습인가.” 탄식들이 절로 나왔다.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많은 국민들은 언제까지 ‘강건너 불’처럼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들 했다.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서 쌀 한톨 옷 한벌씩이라도 보내자며 활발히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 아니 북한이 기아를 해결 못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치자면 어언 7년 째에 접어들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하지만 아직껏 저들의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소식은 좀체 들려오지 않는다.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암담하다는 소식만 전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북한에선 무려 640만명의 주민이 기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크게 줄어 목표량의 절반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장 몇주 내에 북한에선 67만5천명의 중등학교 저학년생과 노인 35만명에게 식량배급을 중단해야할 판이라고도 한다. 오죽하면 세계식량계획(WFP) 존 파월 아시아 지역국장은 “식량 위기에 대한 전망은 오싹하기만 하다”고 탄식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도대체 언제까지 외부 식량원조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 그 긴 세월 북한 당국자들은 무얼 해왔다는 것인지. 백성들 끼니도 해결 못하면서 체제 수호만 부르짖는 그들이 밉살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한없이 딱하기도 하다. 같은 겨레지만 한편에선 남아도는 재고 쌀을 처리 못해 전전긍긍 하는 터이건만.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