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학설이며 퇴계 이황의 인생관인 '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 마음씨를 가리킨다. 그 중 하나가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씨'다.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불의(不義)와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그런 수오지심을 모른다면 인두겁만 썼을 뿐 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게 없다. 그런데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일수록, 철면피일수록 우리 사회에선 출세에 능한 게 아닌가 싶다. 좀도둑이나 흉악범도 아닌 사회 지도층 인사가 불의와 부정 혐의로 검찰에 불려갔다면 그 출두만으로도 일말의 수오지심 근처에는 가 있어야 하고 꿩처럼 수풀에 머리를 숨기려는 자세로 부끄러워할 줄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면 모두 밝혀져 구속되면서도 하나같이 '아니 땐 굴뚝의 연기'로 생사람 잡는다는 항변이고 “사실 무근이다. 돈 받은 적 없다. 그런 사람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는 오리발이다. “부끄럽다. 쥐구멍 확장 공사라도 시켜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면 오죽 그럴싸해 보일까. “일이 잘못된 것 같다. 본인이 미욱하고 부덕한 탓이다” 정도도 괜찮다. 하긴 그런 사람도 있긴 있다. 권위주의 통치때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퇴임 후 수도 없이 검찰에 불려갔지만 그 때마다 대범했고 비굴하지 않았다. “부하가 한 짓이지만 모두가 내 책임이다. 죄 값을 달게 받겠다”며 덮어쓰기를 자청했다.
지방자치의 광역시장이라면 '지방 대통령'격이다. 클린턴이 32세 최연소로 아칸소주 지사를 지내고 대통령이 됐고 부시 대통령 역시 텍사스주 지사를 거쳤듯이 지방 대통령은 곧 전국 대통령의 레지던트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옛 관찰사(觀察使)격인 우리 광역시장이 돈과 이권부터 살피고(觀察) 챙기다가 줄줄이 감옥 행을 택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셰퍼드(shepherd)라는 말은 원래 양몰이 개(牧羊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견마(犬馬)의 정성을 다해 어진 양(백성)들을 보살피는 게 예나 이제나 목민관(牧民官)의 소임이거늘…. <吳東煥 (논설위원)>吳東煥>
지방대통령
입력 2002-05-12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2-05-12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