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4일 미명. 중국당국은 군부대와 장갑차를 동원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와 자유를 요구하는 수만 시위군중에게 무차별 발사를 시작했다. 사망자는 200여명, 부상자는 3천여명에 달했다. 그 며칠후 중국당국은 이같이 발표했다. “천안문사태에서 죽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도 단 한명 없었다. 외국언론들이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해 20세기 총아라는 영상매체를 통해 현장의 진실을 전세계에 보도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조작이나 허위는 발붙일 틈이 없어진 것이다. 이보다 9년앞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또 지난 동계올림픽 쇼트 트랙경기에서 한국으로부터 금메달을 훔쳐간 미국 오노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을 밝혀낸 것도 영상매체의 힘이었다.

장길수군 가족의 망명사건과 관련, 중국이 치외법권 지역인 일본 영사관 안까지 진입해서 이들을 강제로 끌어낸 장면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자 새삼 이같은 영상매체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이 TV화면에는 북한동포들의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고 무자비한 중국공안당국의 강압적인 인권 탄압, 일본의 수수방관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한중일 3국의 위상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듯. TV 보도화면이 아니었다면 치외법권을 침해당한 일본의 항의나 이로 인한 중일간의 외교갈등도 없었을 것이고 길수군 가족은 북한으로 강제송환 당했을 것이란 끔찍한 생각이 든다.

원래 외국 영사관은 빈 협약에 의해 영사의 동의를 얻으면 무장 경찰이 진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과잉 제압, 일본영사관의 무책임한 자세가 거짓없이 공개되고 이로인한 양국의 책임 떠넘기기 외교분쟁이 가열되자 이번엔 중국측이 영사관으로부터 사전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나서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중국측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비디오 테이프는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나도는 녹음 테이프라도 있다면 모든 진실이 규명 될 것을… 앞으로의 탈북자를 위해서라도 중일양국의 책임소재는 반드시 가려져야 할텐데 말이다.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