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폭력 잔혹행위와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성애(性愛) 표현. 요즘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는 우리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여기에 진한 육두문자가 간간이 섞이지 않으면 아예 의사소통마저 어려울만큼 언어폭력들도 대단하다. 영화는 현실의 거울이자 대중의 정서를 반영한다고들 하던데, 툭하면 조폭영화 엽기영화 등이 붐을 이루는 현실이 마냥 씁쓸하다.

하지만 모든 걸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모양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영화 ‘집으로…’가 예상외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산골에 사는 언어장애 외할머니의 일곱살짜리 도시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리고 처음엔 문화적 갈등으로 갖은 투정을 다 부렸지만, 차츰 할머니의 깊이를 모르는 헌신적 사랑에 자신도 모르게 묻혀가는 어린 손자. 별것아닌 내용 같지만 시골 할머니가 말 한마디 없이 도시 손자와 손짓 몸짓 표정만으로 교감하는 장면 장면이 관객의 누선을 자극하고 조용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300만명이 훨씬 넘는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대종상 영화제에서도 9개부문 후보에 오를만큼 세간의 화제작이 되었다. 이정향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주연을 맡았던 무명의 김을분 할머니와 아역배우 유승호군이 각각 최고령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 신인 여우주연상과 신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폭력과 섹스가 담긴 영화만이 살아남는다는 한국영화판에서 그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작품이 히트를 할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조금은 놀랍다.

그러나 단순한 놀라움 이전에 어쩌면 그같은 순수함을 원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진정한 국민정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폭력과 섹스 공해에 벌써부터 식상한 관객들이 그에 대한 일시적 반작용으로 소박하고 순수한 ‘무공해 작품’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없는 건 아니다. 그야 어떻든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터에, 순수하다 못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은 반갑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직은 건강해 보이기에….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