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블랙'이 끼는 말은 나쁜 뜻이 많다. 블랙 리스트(黑表·주의 인물 명부), 블랙 마켓(암시장), 블랙 독(black dog→우울증), 블랙 아이(얻어맞아 생긴 눈 언저리의 시커먼 멍), 블랙 메일(black mail→약탈), 블랙 홀(black hole→군대교도소·영창), 블랙 맨(악마), 블랙 플랙(검은 바탕에 허연 해골이 그려진 소름끼치는 해적 깃발) 등. 반대로 좋은 뜻도 있다. '블랙 카드' 하면 검은 산타클로스나 검은 천사 등이 그려진 70년대 초 유행한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한데 애인이 보낸 그런 '블랙 카드'보다도 수천 수만 배나 받아 갖기를 원하는 신종 '블랙 카드'가 있다.

골드 카드→플래티넘(白金) 카드→'블랙 카드'다. 최고의 부(富)를 과시하는 이런 카드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모집 중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연간 카드 사용액 2억원이 넘는 극소수 부자들이고 카드 이름도 옛 로마군의 100명 정예 단위 조직 대장인 백부장(百夫長)을 뜻하는 '센추리온(centurion)'이다. 이 센추리온 블랙 카드 소지자는 항공기의 1등석, 매진된 스포츠나 공연 티켓 구입 등 별난 서비스를 다 받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블랙 카드든 화이트 카드든 사회에 미치고 사회를 비추는 조도(照度)와 명도(明度)다. 신용 카드가 오히려 숱한 신용 불량자와 빚쟁이를 양산하고 툭하면 살인까지 부르는 등 우리 사회 무대를 암전(暗轉·블랙아웃)케 해서는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안된다. 30대 가장이 아내와 딸을 목 조르는가 하면 20대 고교 동창생들이 단지 돈이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안과원장을 찌르는 카드 빚 살인사건이 또 터졌다.

온갖 카드 빚 사고에 이어 카드 빚쟁이를 책임지고 안전하게 야반도주시켜주고 돈을 받는 이른바 '요니게야(夜逃げ屋)' 업종이 카드 선진국 일본에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였다. 끊이지 않는 카드 빚 '살인 연속극'에 이어 이 땅에도 그런 악덕 상술의 10년 후배들이 꿈틀거릴 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한심한 건 팔짱끼고 뒷짐지고 방관만 하는 관리 책임 당국자들의 무책임이지만….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