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사상 최초로 원자폭탄 세례를 받은 일본의 히로시마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돼버렸다. 도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고, 폭탄이 터진 곳에서 500m 이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 34만명 중 7만8천명이 사망했고, 부상자와 행방불명자도 5만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후 5년 동안 무려 24만명이 방사능 후유증으로 앓다가 죽었다. 사흘 뒤인 8월 9일엔 또 한발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여기서는 인구 27만명 가운데 2만4천명이 사망했고, 부상 4만여명, 행방불명 2천여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혼비백산한 군국주의 일본은 마침내 8월 15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고, 이로써 그 지긋지긋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게 된다.
패전 후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을 만들어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사용’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다짐했다. 또한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소위 ‘비핵 3원칙’을 국시로 표방하고 나서기도 했다. 원자폭탄의 충격에 진저리를 쳤을 뿐 아니라 패전국으로서 세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세계 3~4위를 다투는 군사대국이 돼 있다. 국방예산은 6조엔이 넘어 세계 2위 규모이다. 방위산업기술 수준 역시 미국에 비해 손색이 없고, 일부 최첨단 방위산업 품목은 오히려 미국을 앞서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속내까지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 지난달 31일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세계가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는 틈을 타서 마치 뒤통수라도 치듯이 핵무기 보유를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세계 양대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 핵탄두 감축에 합의, 핵 비확산 노력이 새로운 탄력을 얻고 있는 시점에서다. 그 엉뚱함이 놀라우면서도 되살아나는 군국주의 망령에 몸서리가 처진다. 이제 힘을 키웠으니 더 이상 눈치를 볼 것도 없다는 배짱 같은데, 글쎄….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일본의 배짱
입력 2002-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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