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4일은 대한민국 국경일이었다. 첫 월드컵에 출전, 개막 경기에서 우승 후보 프랑스를 물리친 그날만이 세네갈 국경일은 아니다. 온 국민이 그토록 기뻐 날뛴 날이 우리 현대사에 8·15 광복절 말고 언제 또 있었던가. 새로운 국경일 창시자는 단연 히딩크 감독이다. 토정비결 어법으로 말하면 '동방에서 온 귀인'이지만 그는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우리 축구의 구세주가 아닐 수 없다. 아니, 나사렛 예수가 세상을 구한 '구세주(救世主)'라면 히딩크 감독은 우리 축구를 구한 '구축구주(救蹴球主)'다. 11명의 선수 역시 유다를 뺀 예수의 11사도를 연상케 했다.
히딩크(Hiddink) 그는 'He thinks' 별명 그대로 '생각하는 축구'의 달인이다. 그러나 작년 체코와 프랑스에 5대0으로 연패했을 때 그가 한국에 귀화한다면 그 이름은 '오대영'이 될 것이라는 빈정거림을 받았고 잉크를 쳐 서류를 망쳐버릴(hit ink) 사람이 아닌가 의심스럽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생각들을 여지없이 때려(hit think) 쓸어버렸고 2002년 6월4일을 한국 축구계의 영웅 데뷔일로 간택했던 것이다.
어느 신문 광고 문안 작성자의 산술 실력 또한 뛰어나다. 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후 48년 '1만7천507일 만'의 첫 승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적인 날이었던가.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는 말은 히딩크 사령관이 증명하기 위해 준비된 말이었다. 한데 당나라 '삼체시(三體詩)'엔 '한 사람의 장수가 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1만명의 부하가 희생을 해야만 한다(一將功成萬骨枯)'는 말이 있다. 용장도 용장이지만 잘도 참고 따라준 강졸(强卒)이었기에 해낸 일이다.
이제 16약(弱)의 불안은 없다. 16강(强)이 아닌 그 이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외신들도 그렇게 썼고 폴란드 격침을 이변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차후에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국제 도박사들도 한국의 우승 가능성을 12번째로 꼽고 있다. 이제 계속 쳐대는 손뼉으로 손바닥 아플 날들만 줄줄이 남았다. <吳東煥 (논설위원)>吳東煥>
히딩크 사령관
입력 2002-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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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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