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9년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는 이집트와 폰토스 지역을 점령한 후 그의 친구 마티우스에게 편지를 보낸다. 'Veni, vidi, vici'(왔다, 보았다, 이겼다).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서한으로 기록되고 있다. 배신한 정치 파트너 폼페이우스를 치기 위해 루미콘강을 건너 로마에 입성하는 결단을 행동에 옮긴 후였다. 우리의 월드컵 전사들이 이같은 감격을 어제 대구에서 벌어진 2002년 월드컵 축구 한미전에서 재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비록 무승부 게임이었지만 그 시간에는 너와 내가 없었다. 4천700만명의 '우리'만 있었다. 회사원 상인 공무원 학생 등 전국의 모든 국민이 일손을 놓고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함성이 지구를 진동시켰다.
무엇이 한국인을 이처럼 '하나'로 묶어 놓았을까. 축구처럼 선수와 응원단에게 강렬한 소속감을 고양시키는 스포츠는 없는 듯하다. 국가 대항전에는 민족감정을 불러일으켜 더욱 흥분을 고조시킨다. 룰도 모든 이들이 알 수 있을만큼 단순하고 적당히 거칠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 흥분의 열기는 골인의 순간에 절정에 이르고 제한된 시간이 다 돼 갈수록 맥박은 더욱 빨리 뛴다. 이것이 축구의 매력이다.
이러한 축구의 매력이 한국민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14년전 88서울 올림픽때도 그랬다. 장외의 시민친절, 교통질서도 나무랄 데 없었고 장내 민주시민 질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민은 이처럼 중요한 고비에서 너와 내가 없는 '우리'로 단결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온 국민을 영호남 지역갈등을, 계층간 불신을 조장해서 편가름을 한다. 일부 정치꾼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모레 실시된다. 투표율이 40% 정도로 저조하리라는 전망이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정치도 우리가 보듬어야할 '우리'의 일부인 것을…. 월드컵 축구에서 보여준 국민적 단합의 열기를 투표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한-미축구전과 선거
입력 200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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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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