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T셔츠 물결에 묻혀 너도 나도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목청껏 외쳐왔다. 나라가 온통 월드컵 열기에 흠뻑 젖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방선거일이 바로 내일로 다가와 있다. 앞으로 4년간 내고장 살림을 꾸려나갈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들을 뽑는 날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어느새 이렇게 됐을까 새삼 놀랍기조차 하다.

물론 그동안 지방선거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모처럼 찾아온 전세계적 축제 분위기를 빌미로 골치아픈 정치일랑 일부러라도 잠시 잊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하기야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갖가지 비리의혹에 매일처럼 되풀이되는 막말 비방 공방 등을 보면서 누군들 잊고 싶지 않았으랴.

어찌됐든 선거일은 다가왔는데도 선거 분위기는 좀처럼 살아날 줄을 모른다. 텅빈 유세장은 이미 일상사가 돼버린지 오래고, 심지어 후보자들의 길거리 인사조차도 유권자의 외면을 살 정도로 선거 무관심이 극에 달해 있다. 도무지 내고장 일꾼을 뽑는다는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다 정작 내일 투표율이 몇%나 될는지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분위기도 아니다. 월드컵은 너무 재미 있고, 정치는 갈수록 실망스럽기만 하니.

그러나 내고장 일꾼을 뽑는 일, 그건 결코 언제까지 외면만 할 수도 또 남에게 대신 해달라고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비록 월드컵 열기 속에 잠시 잊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만으로 모든 변명이 성립될 수는 없다. 월드컵 열기는 조만간 식어가겠지만, 이번 선거의 영향은 장장 4년이 이어지는 일이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엉뚱한 결과라도 나오게 된다면 그 피해는 모두 유권자들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정치에 다소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할 일은 하고나서 원망할 일이다.

이제 월드컵 한-폴란드전, 한-미전이 끝났다. 16강 진출을 가름하는 한-포르투갈전도 선거가 끝난 다음날에 있다. 그동안 월드컵에 쏟아온 관심과 열기를 이제라도 내고장 일에 잠시 돌려보자. <박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