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광복절 노래를 두 달 앞당겨 부르고 싶다.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이 땅의 흙을 다시 만져 보고 싶고 허리가 아프도록 바닷물도 춤을 춰 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은 어찌하리.
이 기쁨에 앞서 떠나간 ‘벗님'이 너무나 불쌍하고 이 감격을 모른 채 한 달 전, 1년 전 하늘나라로 이민 떠난 ‘어른님'이 너무도 슬프다.
단군이래 가장 큰 기쁨이라는 월드컵 4강 신화를 노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기쁜 일을 보려고 이토록 오래 살았나 보다”고. ‘땡' 4강이 울리는 순간 전 국민의 ‘순간 눈물 농도'가 이보다 더 진할 수는 없고 전 민족의 ‘순간 감격지수'가 이보다 높을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신화(神話)였고 ‘신(神)나는' 신들이나 만들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정말 4강까지 올라갔는가…. 믿어지지 않는 자문(自問)들이 빗발치는 이유 또한 신화 같은 일을 창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 언론인들도 이렇게 벅찬 가슴으로 기사를 써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강적, 무적(無敵), 전사(戰士), 공격, 혈투, 승전 등 용어만 보더라도 월드컵은 이제 단순한 공차기 유희(遊戱)만은 아니다. 운동, 경기, 오락, 재미, 농담, 희롱 등 스포츠(sports)라는 말뜻에 ‘전쟁'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32개국이 뒤얽혀 싸우는 심각하고도 잔인한 국가간 전쟁에다 무참한 세계대전이 바로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국명 브랜드를 내건 그 냉혹한 90분 전쟁엔 그 나라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 있고 체면과 위상이 달려 있다. 우리 국민과 해외 동포가 한결같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한민족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가장 역동적인 대낮의 나라, 가장 떠들썩한 밤의 나라다. 외신들의 찬탄처럼 ‘한국의 꿈'은 아직도 살아 있고 ‘기적의 행진(miracle run)'은 이 6월 끝까지 뻗쳐 있다. 더 소리치고 더 감격할 일만 남아 있다. <吳東煥 (논설위원)>吳東煥>
4강신화
입력 2002-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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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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