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배’라 하여 아랫배가 불룩 나온 사람들을 몹시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 대다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비쩍 말라있는 중에 누군가 살이 찌고 배까지 나왔다면 그는 분명 잘먹고 잘사는 부자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남보다 뚱뚱한 몸, 튀어나온 배가 무엇보다 건강과 사회적 성공의 상징처럼 비쳐졌으리라.
다소 차원은 다르지만, 폴리네시아인들도 예부터 줄곧 ‘큰 것이 좋다’는 가치관 속에 크고 뚱뚱한 몸매를 자랑해왔다고 한다. 몸집이 커야 힘이 세 어려운 일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긴 과학과 기술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무슨 일이든 힘으로 해결해야 했을테니, 크고 뚱뚱한 몸매를 좋아한 것이 비단 폴리네시아인들 만은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크고 뚱뚱한 몸매를 부러워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우선 몸집이 비대하면 그만큼 거동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의학의 발달과 함께 비만이 고혈압 심장질환 등 성인병을 불러와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게 됐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볼륨있는 것이 아름답다’던 전통적인 미적 감각도 ‘날씬한 것이 멋있다’로 바뀌었다. 너도 나도 살 빼기에 여념들이 없어졌다. 덕분에 갖가지 헬스클럽에 살빼는 약·식품 등이 불티가 난다. 심지어 일부러 몇끼씩 굶으면서까지 살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들도 적지않다.
그러다 보니 날씬하다는 것도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를 정도가 돼가는 모양이다. 얼마 전 영국 서리대학과 호주 멜버른대학 연구진이 312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뭇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불과 일곱살 짜리 어린이들도 스스로 너무 살이 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7~12세 어린이 가운데 여자아이의 거의 절반과 남자아이의 3분의 1이 더 날씬해지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과연 건강이나 미를 제대로 알고 그같은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어린이들이 비단 영국과 호주에만 있지는 않을진대, 끝간데 모르는 다이어트 열풍이 자꾸만 두려워진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날씬함의 한계
입력 2002-06-25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2-06-25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