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진리의 본질' 등 명저(名著)로 우뚝 선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자 하이데거가 나치 시절 프라이부르크대 총장을 지낸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1807년 나폴레옹 군대에 점령당한 베를린에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해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도 베를린대 초대 총장을 지냈다. '뷔리당의 나귀'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물리학자 뷔리당도 두 번이나 파리대 총장을 역임했고 저서 '위대한 대화'로 이름난 미국의 교육가 허친스는 시카고대 총장을 지냈다. 이단자로 몰려 파문을 당하고 화형(火刑)으로 죽어간 베들레헴 성당 주임신부 후스(Huss) 역시 프라하대학 총장이었고 '빛의 형이상학'을 주창한 영국의 철학자며 신학자인 그로스테스트도 옥스퍼드대 총장이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대학 총장으로 '모셔지기'를 가장 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명예도 권위도 존경심도 그 이상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부터가 후에 버지니아대 총장이 됐다. 4대의 매디슨도 같은 버지니아대 총장의 영예와 권위를 누렸고 13대의 필모어도 버팔로대 총장의 영예를 누렸다. 영국 총리를 지낸 로즈버리가 여러 대학 총장을 거친 것은 더욱 큰 영예였고 전 미국 재무장관 서머스가 작년 6월 하버드대 총장에 취임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전 고대 총장 김준엽(金俊燁)씨가 수도 없이 권하는 역대 정권의 총리 자리를 마다한 까닭도 그런 대학 총장의 권위와 지조 때문이 아니었을까.

베풀 장(張), 치마 상(裳)자의 이름도 특이한 장상 총리서리가 아들 국적, 학력, 땅 투기 의혹 등 시비에 휘말리자 '허수아비 총리, 거수기 총리보다는 일류대 총장 자리가 낫지 않으냐'는 논란이 분분하다. 하긴 프랑크푸르트대학 총장에서 총리도 아닌 관방장관 자리를 껄떡해 받아들인 독일의 법학자 할슈타인 같은 사람도 있긴 있다. 그에게 총리냐 대학 총장 자리냐를 묻는다면 어떨까. 대답은 '제비와 참새들이 어찌 기러기와 따오기의 뜻을 알리요(燕雀安知鴻鵠之志哉)'쯤이 되지 않을까?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