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잘사는 유럽은 휴가에 관대하다. 독일 직장인들은 결혼기념일에도 하루를 쉴 수 있고 스페인과 룩셈부르크는 이삿날도 하루 휴가를 허용한다. 자녀 학교를 방문하는 날도 그리스는 하루 휴가를 내주고 가족도 아닌 친척이 사제 서품식(敍品式)을 가져도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참석하도록 하루 휴가를 허가한다. 포르투갈은 또 배우자 간호에도 최다 30일의 휴가를 베푼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우 결혼 휴가는 최소 15일이지만 배우자가 아프다는 이유에는 단 하루도 허용치 않는다.
한데 '휴가' 하면 어디서 누가 '일동(一同)!' 하고 구령이라도 외치듯이 전직장인들이 도시를 텅텅 비우며 바다로 산으로 일제히 몰려가는 여름휴가부터 연상한다. 하긴 영어 베케이션(vacation), 불어 바캉스(vacance)의 어원인 라틴어 바누스(vanus)부터가 '빈자리' '공허한'이란 뜻이다. 비행기의 빈 화장실 표시 베이컨시(vacancy)도 같은 어원이다. 아무튼 휴가, 즉 '바캉스'라는 말의 소유권 보전등기 국가인 프랑스의 여름휴가 열기는 대단하다. 혁명기념일인 7월14일쯤 본격화, 지중해로 알프스로 온통 고스트 타운(유령의 도시) 만들기 행렬을 시작한다. 다른 유럽국도 1년 평균 2개월 휴가의 절반을 여름에 보낸다.
미국의 여름휴가도 열성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작년 8월4일부터 한 달간 휴가를 보내고 백악관으로 돌아가자마자 9·11 테러를 당했고 그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도 90년 여름 한껏 고조된 걸프전의 긴박감도 아랑곳없이 바다 낚시를 즐기다가 낚싯바늘에 그만 오른쪽 귀가 찢겨버렸다. 고이즈미(小泉) 일본 총리의 여름휴가도 자그마치 16일이다. 그러나 경제 불황인 일본의 금년 여름휴가는 '안(安) 근(近) 단(短)'이 특징이라고 한다. '싸게, 가까운 곳에, 짧게' 다녀온다는 것이다.
더위도 휴가도 절정인 8월이다. 휴가의 '休'자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댄 모습이고 '暇'자도 '날(日)을 빌린다'는 뜻이다. 꼭 멀리 떠나야 휴가는 아니다. 그냥 하루 이틀 말미를 얻어 서늘한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도 휴가는 휴가다. <吳東煥(논설위원)>吳東煥(논설위원)>
바캉스
입력 2002-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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