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주유하던 맹자가 어느날 위나라의 혜왕을 알현했다. 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원로에 여기까지 오신걸 보니 이 나라에 어떤 이익이 될만한 일을 가지고 오셨겠죠. 나는 국정에 대해 이웃 나라보다 몇 배 더 노력했는데도 별로 성과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맹자가 답했다. “폐하가 싸우기를 좋아하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하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갑옷과 투구를 버리고 도망친 병사가 있었답니다. 50걸음을 도망친 자가 100걸음을 도망친 자에게 비겁하다고 욕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자 혜왕은 “그건 이상하군요. 도망친 것은 둘 다 똑같은데…”하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맹자(孟子)에 나오는 '오십보 백보'라는 속담의 고사다.
맹자는 이어 이같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장의 이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도리, 즉 인의(人義)입니다. 폐하께서는 백성이 굶는 것에 대해 구제할 생각은 않고 흉년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는 사람을 죽여놓고 내 탓이 아니라 칼이 그랬다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남의 탓만 하는 태도를 버릴 때 나라가 잘 되고 백성들도 나라를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장상 국무총리서리의 인준을 부결시킨 여야당이 서로 우리 잘못은 없다며 '네 탓'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정말 볼썽사납기 그지 없다. 부결과정이나 그 이유에 잘못이 없다면 왜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 못할까.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내분 탓으로,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위장 자유투표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여성계 반발과 장 전 국무총리서리의 도덕적 흠이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도덕성 논란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을 걱정하고 있는 듯 하다. 민주당도 당내 불협화음 노출이 선거를 앞두고 결코 도움이 안돼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국회의원들도 모두 뒤가 구린데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들이 한 일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는 정치인들이 감히 누구를 검증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인의를 모르는 오십보 백보의 병사들과 같다. <성정홍 (논설위원)>성정홍>
오십보 백보
입력 2002-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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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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