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의 조양자는 책이라는 고을을 공략, 항복시켰다. 그럼에도 양자는 별로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측근들이 물었다. “이처럼 큰 성과를 얻어 모두 기뻐하는데 폐하께서는 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양자가 말했다. “아무리 큰 홍수가 나도 사흘이면 강물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회오리바람이나 폭풍도 하루종일 계속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별로 덕을 쌓지도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한 고을을 점령했다. 생각컨대 이 세력은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

이처럼 겸허한 양자의 말을 듣고 공자가 말했다. “군주에게 이러한 겸손함이 있다면 조나라는 더욱 번영할 것이다.” 공자의 예언대로 조나라는 후에 진(晋)나라 땅을 셋으로 나눠 그 하나를 차지하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한나라가 되었다. 이는 중국 전국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내용의 한토막이다. 승자가 앞 일을 걱정하는 것은 번영의 원인이 되고 기뻐하는 것은 망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도 여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승리를 얻기보다는 승리를 지키는 수성(守城)이 더 어렵다고도 한다. 그래서 현명한 리더는 이점을 알고 승리를 오래 지속시키려 하기 때문에 먼 후일까지 영광을 누린다는 얘기다. 승자의 자만을 경고하는 한 예에 불과하다.

전국 13개 지역구에서 치러진 8·8재보선 결과 한나라당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11곳을 석권하는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국회 재적 272석 가운데 절반(136석)보다 3석이 더 많은 139석이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의 표현대로 1당 독재가 가능한 의석을 갖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은 민주당과 협의해서 원칙대로 처리하겠다.” “국민들로부터 오만하다는 평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반응이지만 모두 귀에 익숙한 말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 승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비리와 민주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인지 아니면 원내 제1당으로서 할 일을 다해서 얻은 결과인지를 보다 겸허히 성찰해 봐야 한다. 세력이 커지면 언젠가는 쇠퇴해지기 때문에 이를 미리 걱정하는 조양자의 겸손함이 새삼 생각난다. <성정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