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儒學)에 깊이 젖어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이념적으로 지향했던 관리상은 맑고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淸白吏)였다. 여기에 정부는 의도적으로 청렴한 관리를 선발하여 청백리란 칭호를 부여하고 여러가지 특혜를 주면서 그들을 자극했다. 이 때 살아서 뽑힌 사람을 염근리(廉謹吏)라 했고, 죽어서 뽑힌 사람을 청백리라 불렀다. 그러나 대개 염근리로 선발된 사람이 죽으면 청백리가 되었으므로 두 경우를 가리지 않고 청백리라 통칭하기도 했다.
청백리를 뽑는 목적은 무엇보다 재물을 탐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풍습을 막고 건강한 사풍(士風)을 진작시키자는데 있었다. 아울러 다른 이들의 귀감으로 삼아 공직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하자는 뜻에서였다. 따라서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당시 관리들의 사회가 맑고 깨끗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성 싶다. 꼭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조선시대 청백리나 염근리로 선발된 관리들은 그다지 많지를 못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태조 때부터 숙종 때까지 모두 110명 뿐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다산은 ‘400여년간 벼슬한 사람이 몇천 몇만인데 청백리로 뽑힌 자가 고작 이 정도라는 건 사대부의 수치’라고 한탄했다.
며칠 전 대검(大檢)이 ‘2002 범죄분석’을 발간했다. 여기서 대검은 직무유기 직권남용 수뢰 증뢰를 공직에 직결된 4대 범죄로 규정하고 97년 530명, 98년 690명, 99년 1천298명, 2000년 956명, 2001년 1천76명이 이들 범죄혐의로 입건됐다고 집계했다. 이 집계대로라면 공직 4대 범죄만 따져도 4년새 2배 이상 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검은 지난 달에도 공직부패의 전형인 알선수재피의자가 현정부 4년간 737명으로 문민정부 같은 기간 491명의 1.5배라고 밝힌바 있다.
다산이 한탄했던 시대로 부터 어언 200여년이 지났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 삶의 형태도 따라서 변한다고들 하던데. 아무리 청백리를 뽑는다, 사정(司正)을 강화한다 해도 좀처럼 바뀔줄 모르는 게 아마도 벼슬사회의 생리인지도 모르겠다.
바뀌지 않는 것
입력 200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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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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