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발표한 '나가사키(長崎)평화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57년 전 오늘, 8월9일 나가사키 거리는 일순 폐허가 돼버렸다. 고도 9천600m에서 투하된 1발의 원폭은 지상 500m 상공에서 작렬, 수천 도의 열선(熱線)과 맹렬한 폭풍이 노인, 여성, 그리고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까지도 휩쓸어버렸다. 사자 7만4천명, 부상자 7만5천명에 달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무서운 방사선에 의한 백혈병 등 암에 걸려 죽어간다….” 2차대전은 그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땡땡땡 끝 종을 울렸고 90년 5월 그들이 공식 발표한 원폭 사망자는 29만5천956명이었다. 하지만 그 선언문에 꼭 넣었어야 할 단어는 '자업자득'이었다.
원폭 투하 미국 기장 폴 티베트 대령 등을 일인들은 '살인마'라 부른다. 그러나 그는 “지구의 파멸을 막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원폭 투하가 아니었다면 2차대전의 비극은 몇 배, 몇십 배로 커졌을 것이고 '인간이 얼마나 악독할 수 있는가'의 극한을 보여준 일본군 731세균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은 끝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에게 물만 먹여도 60∼70일을 버틴다는 사실을 실험했고 전혀 물을 안주고 빵만 먹이면 6∼7일쯤 가서 퉁퉁 부은 채 피를 토한다는 것도 알았다. 인체의 70% 이상인 수분을 증명하기 위해 한증막에 넣고 쪄 수분을 빼는 실험을 강행, 70㎏의 마루타를 15㎏으로 만들고 인마(人馬)의 피를 바꿔 주입하는 실험도 자행했다.
그들은 생체실험 대상자를 '마루타(丸太→껍데기 벗긴 통나무)'라 불렀고 페스트, 콜레라, 파상풍 등의 균을 주사해 죽어가는 모습도 관찰했다. 그 세균부대 살인공장장이 이시이시로(石井四郞)였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石井'이라는 이름의 일식집엔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 땅의 노인도 있다.
'흙 다시 만져 보고/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빛을 찾은 날'이 올해로 벌써 57번째다. 모처럼 8·15 남북 공동행사가 남쪽서 열린다 해도 아직도 한반도의 절반은 그 빛이 너무나 희미하다. 우리 땅 전체가 조도(照度) 높고 명도(明度) 드높게 휘황한 그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吳東煥 (논설위원)>吳東煥>
'빛을 찾은 날'
입력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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