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예가 없다지만 그렇지 않다. 34년간의 군부 철권통치 끝에 93년 첫 파라과이 민선 대통령이 된 후안 카를로스 와스모시만 해도 재벌 출신이다. 그는 토목공학 전공을 살려 일찍이 건설업계에 투신, 70∼80년대 파라과이와 브라질이 공동 발주한 이타이푸 댐 공사 등 각종 정부 발주 공사를 따내면서 일약 30대 젊은 재벌이 된 것이다. 이른바 정경유착 덕이었다. 그런 그가 오랜 군부 정권을 쿠데타로 물리친 로드리게스 전 대통령의 후원으로 정계에 투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시종 민주화, 민영화 등 민(民), 민만을 외친 결과였다.

95년 프랑스 대선의 재벌 후보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푸조 회장 카르베였다. 그는 프랑스 정·재계의 엘리트 양성 코스인 국립행정학원(ENA) 출신으로 파리국립은행 회장 등을 지낸 금융통이었다. 한데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고문을 맡아온 그가 출마를 선언한 시점이 92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섯 달 앞둔 그 때였고 무소속 재벌 후보 로스페로의 지지율이 부시와 클린턴을 앞서고 있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로스페로'였던 것인가. 또 그 무렵 덩샤오핑(鄧小平)의 신임이 두터워 주석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롱이런(榮毅仁)도 대재벌 출신이다.

그런데 재벌 대통령 후보의 실패작이라면 단연 로스페로가 꼽힌다. 텍사스주 출신인 그는 62년 단돈 1천달러를 밑천으로 컴퓨터 관련회사 EDS를 창설, 재벌로 큰 사람에다 서부영화의 히어로와 같은 행동파로 알려진 괴짜다. 한데 선거 5개월 전까지도 그의 '경제 대통령' 지지율이 부시와 클린턴을 앞질렀지만 한 달 전부터 갑자기 하락, 3파전이 아닌 2.5파전, '1+1+0.5'의 대결이라는 세간의 우스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는 정몽준씨 영입 경쟁이 뜨겁다. 정경유착, 혼벌(婚閥) 규벌(閨閥) 차원이 아닌 그의 궁행(躬行), 몸소 나섬에 과연 행운은 따라줄 것이며 아버지가 양손에 못다 거머쥔 부와 권력을 그는 움켜잡을 수 있을 것인지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