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여년 전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아편을 대량 재배하여 그 대부분을 중국 땅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국에선 아편 흡연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회 전분야가 엄청난 후유증을 앓게된다. 아편 흡입은 상류계층에서 빈민층, 심지어 부녀자와 승려들에게까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183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아편 중독자수는 자그마치 200만이 넘었다. 특히 심각한 건 모든 성의 관료와 병사들에게까지 아편 흡입 풍조가 넓게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국가 기능마저 거의 마비상태에 빠져들었음은 물론이다.
견디다 못한 당시 청(淸)나라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항구마다 쌓여있던 아편을 불태워버리고 영국상인들에게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영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기회만 엿보던 그들은 마침내 이를 빌미로 1840년 전쟁(아편전쟁)을 도발했고, 무력할대로 무력해진 중국군은 일거에 격파당하고 만다. 그 결과 중국은 1842년 홍콩 할양 등 13개항의 불평등조약(난징조약) 체결과 함께 막대한 배상금까지 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드넓은 중국대륙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최근 우리나라도 마약 중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회 곳곳이 병들어가고 있다. 검찰이 적발한 마약사범이 3년째 1만명을 넘고 있으며, 상습투약 인구가 무려 20만~40만명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지난 해에는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량이 2000년보다 66%나 증가하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병을 치료하는 병원마저 마약 공급처로 이용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작년 한햇동안 병원에서 분실된 의료용 마약류가 자그마치 14만6천여명분에 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의료기관의 관리 허술 탓이라 하겠지만,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병원까지 마약 확산에 한몫 톡톡히 거든 셈이 되고 말았다.
지나친 노파심인지는 몰라도 이쯤되고 보면 19세기 아편전쟁 당시의 중국상황이 결코 남의 일만 같지를 않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오게된 것인지, 정녕 뾰족한 처방책은 없는 것인지. 한탄만 하고 있기엔 사태가 너무 급박하다.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마약확산
입력 2002-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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