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국기'도 '천국기'도 아닌 '만국기(萬國旗)'라고 하면 과장이 심하지만, 뉴욕의 유엔본부나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걸려 있는 만국기를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별과 달, 해가 아니고 십자가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듯한 세계 각국 국기들이 속된 말로 유치찬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조기(星條旗)부터가 별 투성이고 중국의 오성기(五星旗)도 이름 그대로 별이 다섯이다. 보스니아와 투발루는 구성기(九星旗), 베네수엘라와 콩고는 칠성기(七星旗), 호주는 육성기, 싱가포르와 파푸아뉴기니는 오성기, 미크로네시아는 사성기다. 한두 개짜리도 흔하다.

또한 달만 그린 국기(몰디브)보다는 파키스탄처럼 달과 별을 그린 국기도 많고 달과 해를 담은 국기(말레이시아)도 있다. 흰 바탕에 곤지 찍은 듯한 일본의 일장기와는 달리 방글라데시는 녹색 바탕이고 라오스는 하얀 태양, 파라오와 카자흐스탄은 노란 태양, 니제르는 살구 빛 태양이다. 망치와 낫의 소련연방 국기는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바레인은 붉은 톱날, 카타르는 갈색 톱날, 바르바도스는 삼지창(三枝槍)이고 그림도 무늬도 없는 녹색 국기(리비아)도 있다. 굳이 지역별로 가린다면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 국기, 녹황홍은 아프리카, 청백청은 중미, 십자 표시는 북유럽 국기에 많다.

국기야말로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강렬한 심벌이지만 그다지 강하지도 않으면서 독특하고도 고상한 국기는 태극기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심오하고도 철학적인 뜻까지 품고 있다. 바탕은 평화, 원형은 단일, 청과 홍의 음양은 창조정신을 뜻하고 건곤(乾坤)과 이감(離坎)은 무궁과 광명을 상징한다. 한데 미국의 정치외교 고문 데니(Deny)가 귀국 때 고종황제로부터 받았다는 그 태극기야말로 세련과 고상함의 백미다.

한반도 깃발은 국기가 아니다. 국제적인 행사장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국토 그림의 깃발이 태극기 대신 뒤덮인다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를 맹세할 자리는 어디서 찾고 태극기에 담긴 민족의 전통과 이상은 또 어찌할 것인가. <吳東煥 (논설위원)>